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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제목 기도의 사람, 다니엘을 만나다!
작성자 holylandtour 작성일 2019-02-25 18:17:18




 

 

 

 

1. 다니엘의 묘 소개

 

 

다니엘은 남유다 왕국이 멸망하기 시작한 B.C. 605년 제1차 바벨론 포로때로부터 바벨론 제국을 정복했던

 

바사왕 고레스의 통치 원년인 B.C. 538년까지 바벨론 시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한 선지자이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던 해는 B.C.605년으로 이해에 그 유명한 애굽과 바벨론간의 갈그미스(Carchemish) 전투가

 

벌어졌다. 이는 바벨론이 앗수르와 애굽을 차례로 격파하고 고대 근동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당시 남 왕국 유다는 애굽 왕 바로 느고(Necho)에 의해 즉위 하게 된 제18대 왕 여호야김(B.C.609-598)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애굽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패배함에 따라 남유다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노를 사게 되어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다니엘이 바로 이 무리에 속해 있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있는

 

동안 교체된 바벨론 왕들의 계보를 살펴보면, 느부 갓네살 2세(B.C.605 -562)에 이어 에월 므로닥 (B.C.562-560).

 

네리글리살(B.C.560-556). 라바 시 말둑(B.C.556), 나보니두스(B.C.556-539), 벨 사살(B.C.550-539)이 차례로

 

등극 하였으며, 나보니두스와 벨사살은 상당 기간 동안 공동 통치를 하였다. 그리고 바사 왕 고레스가

 

B.C.539 년에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 바사 제국이 근동 지역에 패권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성지순례를 떠난지 5일째 되는 날(10월 19일 금 요일 오후 6시경) 드디어 다니엘의 묘에 도착 했다. 다니엘의 묘는

 

수산궁터에서 아래 마을로 내려가면 사우르 강둑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 모양이 고깔모자 같기도 하고,

 

크리스마스트리 같기도 한 이슬람 사원 안에 있었다.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열기로 가득했 다. 한쪽에서는

 

남자의 무리가, 또 한쪽에서는 검은 차도르를 쓴 여인들이 대열을 이뤄 기도했고, 또 여기저기 흩어져서 개별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이드의 말대로 그곳에서 기도하면 응답이 잘되어서 그럴까?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이기까지 했다. 거기서는 정숙해야 했고, 사진촬영도 금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니엘의 관은

 

눈으로만 볼 수 있었다. 황금색으로 장식된 다니엘의 관은 한 눈 에 보기에도 화려했다.

 

 

다니엘의 묘는 이슬람교는 물론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지로 여겨지는 이란의 구약 성경 유적 지다. 수산에 있는

 

묘지는 이슬람교적인 해석으로 인해 이슬람 시아파 교도들에게 중요한 성지 순례지로 여겨지며 항상 수많은

 

참배객들로 붐 빈다고 한다. 이유는 묘지에 "모하메트가 올 것을 예언한 구약의 선지자 다니엘"이라고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금빛 찬란하게 장식된 다니엘의 석관은 일종의 가묘이지만 이슬람교에서는 가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니엘의 묘는 9∼18세기까지 아랍인 작가들에 의해 자주 언급됐다. 1164∼1173년 사이 이란을 여행했던

 

투델라의 벤야민 (Benjamin)에 의하면 셀주크 왕조의 산야르(Sanjar 1117∼1157) 도시에 살던 두 지역 주민들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다니엘의 관을 유리관에 넣어 그 도시 중앙에 있는 강의 다리에 매달아 두도록 했다 고 전한다.

 

수산은 바벨론에게 멸망 당한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와 살던 곳 중의 하나로 다니엘과 느헤미야, 에스더의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2. 기도의 사람 다니엘의 묘를 보고

 

 

소년의 나이에 포로가 된 다니엘은 남다른 총명함과 지혜로 4번의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준수한 외모와 명민함, 그리고 청렴결백함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던 인재 중의 인재였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바벨론왕 느브갓네살, 벨사살, 바사의 다리오왕, 그리고 고레스 같은 왕들 이 다니엘을 곁에 두고 싶어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그러나 다니엘이 존귀한 것은, 그가 외모가 준수해서도, 탁월한 지혜를 가져서도, 총리를

 

4번이나 해서도 아니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도의 사람이었다.

 

특히 다니엘은 평생 하루 3번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를 할 정도로 많은 기도를 하였다. 굶주린 사자 우리 속에

 

던져 넣는다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그치지 않았다. 그는 기도하기를 쉬지도, 포기하지도, 지치지도 않았다.

 

 

다니엘의 묘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감동은 성경 속의 인물을 역사 속의 인물로 만났다는 것이다. 그는 분명히

 

존재했었다. 그리고 무덤을 남겼다. 하지만 다니엘은 무덤만을 남긴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 안에 강력한 도전과

 

감동을 남겼다. 그리고 내 속에, 내 안에, 내 영에 다니엘은 살아있다. 그의 영향력은 시간을 초월하고,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고, 심지어는 종교까지도 초월한다. 다니엘을 통해 성지순례의 보람과 의미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강화동지방 오성교회 방태식 목사 올림.

 

 

< 본 여행후기는 방태식 목사님께서 작성해 주신 글을 받아 후기 게시판에 기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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